[혁신이 기업 미래 바꾼다] 에어컨 제조 명가 ‘발상의 전환’… 김치냉장고 대명사 되다
(22) 김치냉장고 개척자 대유위니아
김장김치를 비롯해 각종 김치류뿐만 아니라 쌀, 고기, 야채 등 각종 먹거리를 김치냉장고에 차곡차곡 넣는 주부들의 김치냉장고 사랑 덕분에 한국에 연간 1조원대의 새로운 가전시장이 탄생했다.
프랑스의 와인 냉장고, 일본의 생선 냉장고처럼 김치냉장고는 한국 음식문화의 상징이다. 그리고 ‘김치냉장고=딤채’라고 연상할 정도로 한국 김치냉장고 역사에 ‘딤채’를 빼놓을 수 없다.

최초의 김치냉장고를 만든 것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가전업체 삼성전자도, LG전자도 아니었다. 상용차 및 기차에 들어가는 차량용 에어컨과 가정용 에어컨을 생산하던 만도기계(현 대유위니아)였다.
여름에 에어컨을 팔던 만도기계에게 겨울은 비수기였다.
일 년 중 절반을 비수기로 보내야 했던 만도는 에어컨을 대신할 겨울철 먹거리를 고민하다가 김장김치의 맛을 오랫동안 보관할 김치냉장고를 생각해냈다. 마침 1980년대 후반 전국에 아파트가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많은 가구가 김칫독을 묻을 마당이 없어 금세 변하는 김치 맛에 주부들이 속을 태워야 했다.
대유위니아 관계자는 22일 “프랑스에는 와인 냉장고가, 일본에 생선용 냉장고가 있으니 한국 고유 음식인 김치만 따로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가 있으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대유위니아는 1993년 국내 최초로 김치연구소(현 딤채발효미과학연구소)를 설립하고 2년여 만인 1995년 11월 최초의 김치냉장고를 출시했다. 냉장고 브랜드는 사내 공모를 통해 ‘딤채’로 선정했다. 딤채는 조선 중종 때 사용되던 김치의 옛말이다.
그러나 삼성, 럭키금성(현 LG전자)이 냉장고를 비롯한 가전시장을 양분하던 시절, 중소 자동차 부품회사가 난생 처음 보는 김치냉장고를 만든다고 하니 주부들이 관심을 가질 리 없었다. 그래서 만도기계는 회사명보다 브랜드를 앞세운 구전 마케팅에 나섰다.
먼저 유명 요리사, 학생회 어머니, 시민단체 여성 리더, 여성 정치인 등 3000명의 오피니언 리더를 선정해 김치냉장고를 6개월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소비자 체험단을 운영했다.
6개월간 사용해본 후 계속 제품을 쓰고 싶어하는 참가자들에게 50% 할인된 가격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더니 참가자 3000명 중 무려 97%가 제품을 구매했다.
이어 딤채 10대를 사면 1대를 더주는 10+1 이벤트를 실시하자 주부들 사이에 김치냉장고를 장만하기 위한 ‘딤채계’가 유행처럼 번졌다. 요즘은 원 플러스 원(1+1) 형식의 이벤트가 일반화됐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획기적인 마케팅 방법이었다.
딤채가 인기를 끈 후에도 만도기계는 회사명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상품 브랜드명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한 초등학교에서 ‘옹기그릇’을 대체하는 요즘 물건을 묻는 문제에 김치냉장고 대신 ‘딤채’로 적은 학생이 80%에 달했다는 일화도 여기서 비롯됐다. ‘딤채=김치냉장고’라는 인식을 확산시킨 딤채 마케팅 기법은 영국 헐대학(Hull University) 경영학 교재에 7쪽에 걸쳐 한국의 대표적인 마케팅 성공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전통 김장독 원리로 살려낸 김치 맛
1998년 삼성전자와 LG전자도 김치냉장고 시장에 뛰어들어 대유위니아(만도기계에서 사명 변경)와 ‘3강 구도’ 속에 치열한 기술 경쟁이 시작됐다. 김치냉장고는 우리나라 전통 김장독의 김치 숙성 및 보관 원리를 현대기술로 구현한 것이다.
겨울철 땅속에 묻힌 김장독은 냉기 유출을 차단하고, 외부 공기 접촉을 최소화하면서 김장독 내 온도를 0도에서 영하 1도 사이로 유지한다.
대유위니아는 김치 숙성과 보관 원리를 현대에 맞게 구현하기 위해 저장실에 직접냉각방식을 적용했다. 직접냉각이 온돌로 바닥을 직접 덥히는 방식과 비슷하다면 간접냉각은 온풍기 방식이다. 전통 김칫독도 땅속에 있는 흙이 항아리를 감싸면서 냉각하는 직접냉각방식이다.
2000년대 중반 혼수 필수가전이 될 정도로 김치냉장고가 보편화되면서 교체 주기에 맞춰 디자인도 진화를 거듭했다.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김치냉장고는 김장독처럼 상부의 뚜껑을 여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무거운 김치통을 꺼내느라 허리가 아프다는 주부들의 의견을 반영해 서랍형으로 바뀌었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일반냉장고처럼 스탠드형이 나왔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