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CG의 한중일 ICT 삼국지 ① ◆

요즘 반도체 업계의 최대 이슈는 도시바 인수전이다. 140년 역사의 도시바가 원전 사업 손실을 견디다 못해 알짜 반도체 사업을 매물로 내놓자, 한·중(대만)·일 3개국 기업이 이를 사려고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뒤늦게 미국이 끼어들며 혼전 양상이 되고 있다. 도시바 향방에 따라 반도체 산업의 경쟁 구도는 하루아침에 달라질 것이다.
3국 간 경합은 비단 반도체 산업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이 세 나라는 세계 최대의 제조업 생산기지다. 특히 한·중·일의 철강·선박·반도체·디스플레이 등 4대 산업 생산량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약 90%를 차지한다. 과거에는 세 나라가 역할을 나눴다. 일본은 고기술 부품과 장비에, 중국은 저임금에 기반한 완제품 조립 생산에 특화했고 한국은 그 중간쯤이었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양적 성장이 질적 전환으로 바뀌기 시작한 90년대부터 이런 구도에 균열이 생겼고, 2000년대를 거치면서 주요 제조업의 패권이 일본→한국→중국으로 이동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철강과 조선업이 대표적이다. 한국이 일본에서 패권을 빼앗으면, 이를 다시 중국이 가져갔다. 지금 중국은 세계 철강의 50%(2016년 기준)를, 선박의 36%(2016년 9월 수주잔량 기준)를 생산하는 1위국이다.
그럼 4대 산업 중 남은 두 가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상황은 어떨까. 현재 반도체 산업의 패권을 쥔 나라는 한국이다. 외형상 좋은 시절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호황기에 진입해 업계 1위인 우리나라 기업이 이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마음 놓을 상황은 아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포하고 반도체 산업 부흥을 정부 최우선 어젠더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10%에 못 미치는 자국 반도체 사용률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국 정부의 목표다. 5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겠다고 하고 있으며, 전 세계 우수 인력들도 빨아들이고 있다. 단기 집중 육성정책에 힘입어 이미 중국은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와 생산에서 한국 수준에 도달했고 메모리 반도체 양산 역시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상황은 반도체 보다 더 급하다. 2009년부터 중국계 업체들이 노트북컴퓨터, 모니터용 LCD 시장에 적극 뛰어들면서 공급과잉 사이클이 시작됐다. 단가 하락 압력에 한국 업체들은 팔수록 커지는 손해를 막고자 저수익 제품군의 생산량을 계속 줄이고 있다. 그 자리를 중국 업체가 파고들었음은 물론이다.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면세와 연구개발비 지원 등을 통해 LCD 산업을 육성했다. 이를 통해 BOE, CSOT 등 대형 디스플레이업체들이 탄생했다. 중국은 지금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8세대 설비를 넘어서는 10세대 투자를 선도하고 있다.
3국 간 경합은 비단 반도체 산업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럼 4대 산업 중 남은 두 가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상황은 어떨까. 현재 반도체 산업의 패권을 쥔 나라는 한국이다. 외형상 좋은 시절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반도체 호황기에 진입해 업계 1위인 우리나라 기업이 이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마음 놓을 상황은 아니다.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선포하고 반도체 산업 부흥을 정부 최우선 어젠더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10%에 못 미치는 자국 반도체 사용률을 3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중국 정부의 목표다. 5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붓겠다고 하고 있으며, 전 세계 우수 인력들도 빨아들이고 있다. 단기 집중 육성정책에 힘입어 이미 중국은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와 생산에서 한국 수준에 도달했고 메모리 반도체 양산 역시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 산업의 상황은 반도체 보다 더 급하다. 2009년부터 중국계 업체들이 노트북컴퓨터, 모니터용 LCD 시장에 적극 뛰어들면서 공급과잉 사이클이 시작됐다. 단가 하락 압력에 한국 업체들은 팔수록 커지는 손해를 막고자 저수익 제품군의 생산량을 계속 줄이고 있다. 그 자리를 중국 업체가 파고들었음은 물론이다. 중국은 10여 년 전부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대규모 투자를 하고, 면세와 연구개발비 지원 등을 통해 LCD 산업을 육성했다. 이를 통해 BOE, CSOT 등 대형 디스플레이업체들이 탄생했다. 중국은 지금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의 8세대 설비를 넘어서는 10세대 투자를 선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영광을 누렸던 일본 전자 기업들은 한국과 중국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을까? 그렇지 않다. 파산 또는 매각이 시간 문제로 생각됐던 소니는 흑자전환에 성공해 일단 한숨을 돌렸다. 소니 생명 연장의 비밀은 이미지 센서에 있다. 이미지 센서를 주력으로 하는 반도체 솔루션 사업부는 연 4조원의 매출을 올린다. 애플 아이폰 등에 제품을 공급해 지난해 기준 시장 점유율 44.5%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이미지 센서는 스마트폰 등 소형 정밀 카메라의 화질을 결정하는 핵심 반도체 부품으로, 장기간의 R&D(연구개발)와 아날로그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니는 원래 잘하던 일에서 신사업 기회를 찾았던 것이다.
파나소닉은 가전회사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신했다. 오히려 보쉬 같은 시스템 솔루션 회사에 더 가깝다. 자동차가 스마트폰을 이을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으로 주목 받자 글로벌 IT 기업들이 앞다퉈 차 부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파나소닉이 한 발 빨리 엔터테인먼트와 내비게이션을 통합하는 솔루션을 제공했다. 이는 기존 가전 사업에서 소비자를 상대로 제품을 개발하던 역량을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파나소닉은 차 부품 사업에서 약 15조원(2015년 기준)의 매출을 올렸고, 최근 5년간 3배가 넘는 고성장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솔루션 사업을 모터, 정밀기계, 저장장치 등으로도 확장하는 중이다.
일본 가전 기업의 이 같은 변신은 아직 진화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한국 전자 기업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 산업 주도권 이동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저임금 노동력을 다량 투여하는 하드웨어 조립산업에서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빨랐으나 같은 아날로그형 산업이라도, 장인의 숙련된 기술이 중요한 소재·부품 또는 소프트웨어 비중이 높은 산업은 쉽게 장악되지 않았다. 이것이 주요 산업의 주도권을 모두 넘겨 준 듯한 일본 제조업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이며, 우리가 배울 점이기도 하다.
파나소닉은 가전회사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변신했다. 오히려 보쉬 같은 시스템 솔루션 회사에 더 가깝다. 자동차가 스마트폰을 이을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으로 주목 받자 글로벌 IT 기업들이 앞다퉈 차 부품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가운데, 파나소닉이 한 발 빨리 엔터테인먼트와 내비게이션을 통합하는 솔루션을 제공했다. 이는 기존 가전 사업에서 소비자를 상대로 제품을 개발하던 역량을 활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파나소닉은 차 부품 사업에서 약 15조원(2015년 기준)의 매출을 올렸고, 최근 5년간 3배가 넘는 고성장을 하고 있다. 이 회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솔루션 사업을 모터, 정밀기계, 저장장치 등으로도 확장하는 중이다.
일본 가전 기업의 이 같은 변신은 아직 진화 방향을 설정하지 못한 한국 전자 기업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 산업 주도권 이동의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저임금 노동력을 다량 투여하는 하드웨어 조립산업에서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속도가 빨랐으나 같은 아날로그형 산업이라도, 장인의 숙련된 기술이 중요한 소재·부품 또는 소프트웨어 비중이 높은 산업은 쉽게 장악되지 않았다. 이것이 주요 산업의 주도권을 모두 넘겨 준 듯한 일본 제조업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이며, 우리가 배울 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제조업에서 익힌 노하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활용해 소재와 핵심 부품으로 차별화할 필요가 있다. 또, B2B(기업 간 거래) 솔루션 역시 노동력과 대규모 자본 투입만으로는 답을 찾기 어려운 영역이다. 고객사 하나하나에 대한 차별화된 이해가 이 사업의 핵심 역량이기 때문이다. IBM과 같은 선도 B2B 솔루션 업체들은, 한국 기업이 생산한 하드웨어를 고객별 통합 솔루션 형태로 제공해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어 낸다. 재주 부리는 사람, 돈 버는 사람이 따로따로인 형국이다.
이런 맥락에서 메신저 서비스 라인의 글로벌화 성공도 시사점이 많다. 이제까지 통했던 한국 기업들의 성공 공식은 앞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과거의 공식을 더 열심히 실행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는다. 다른 생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인혁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
이런 맥락에서 메신저 서비스 라인의 글로벌화 성공도 시사점이 많다. 이제까지 통했던 한국 기업들의 성공 공식은 앞으로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이,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과거의 공식을 더 열심히 실행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는다. 다른 생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인혁 보스턴컨설팅그룹 파트너]